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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시, 관광 1번지를 향한 새로운 도약···관계기관과 ‘일심단결’구미시는 13일 시청 대회의실에서 경상북도교육청 연수원, ㈜호텔금오산, 금오산 상가번영회, 선주원남동 도시재생지원센터, 한국외식업중앙회 구미시지부, 대한숙박업중앙회 구미시 지부 대표 등 2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지역 관광 활성화를 위한 업무 협약을 체결했다. 매년 200여 개의 교육과정을 개설하는 경상북도교육청 연수원은 유·초·중등 교사 등 매년 약 14,000명의 교육 공무원이 방문하고 있으며, 그중 약 5,000명이 구미에서 숙박하고 있다. 이번 협약을 통해 금오산 상가번영회, ㈜호텔금오산은 연수생들의 숙식 환경을 개선하는 데 힘쓰며, 구미시는 시티 투어 운영 등 연수 기간 전후로 이어지는 구미 관광 여건 구축에 나선다. 또한, 구미 역사 문화 탐방 프로그램 개설하고 운영할 계획이며, 경상북도교육청 연수원과 구미 성리학역사관의 상호 대관 및 체험·연수 프로그램에 협력한다. 김장호 구미시장은 “이번 협약을 계기로 더욱 긴밀한 협력 관계를 구축해 구미시가 관광하고 싶은 도시, 연수 가고 싶은 도시, 경북의 관광 거점도시로 도약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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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시, 시내버스 금오산 노선 운행 확대···새 노선 신설구미시는 4일부터 구미역과 금오산을 오가는 시내버스 노선 27-3번을 신설해 운행을 시작했다. 지금까지 27번 등 3개 노선이 금오산 방면으로 운행했으나, 총 운행 횟수가 1일 10회에 그쳐 운행 횟수 확대 요청이 많았으며, 신설 노선이 1일 11회 운행함에 따라 총 운행 횟수가 1일 21회까지 증가했다. 시는 금오산리프레시사업, 선주원남동(각산마을) 도시재생사업 등 금오산·금리단길 관광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시책을 추진하고 있으며, 시내버스 운행 확대로 방문 편의를 더욱 향상할 계획이다. 김장호 시장은 “금오산은 명실상부한 구미 대표 관광지로서 대중교통 인프라 확대로 접근성을 더욱 향상할 것이며, 추후 광역철도가 개통되면 외부 관광객도 편리하게 금오산을 찾을 수 있어 관광 활성화에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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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시, ‘폐의약품 수거함’ 행정복지센터 10개소에 설치구미시는 원활한 폐의약품의 수거와 처리를 위해 행정복지센터 10개소(인동, 양포, 선주원남, 상모사곡, 도량, 송정, 임오, 진미,형곡1, 형곡2동 행정복지센터)에 수거함을 설치했다. 폐의약품은 보관 기한이 지났거나 변질·부패해 사용할 수 없는 의약품으로, 이를 하수구 등에 무분별하게 버릴 경우 토양이나 하천에 유입돼 환경오염을 유발한다. 그동안 보건소와 약국에서 폐의약품을 수거해 왔으나, 행정복지센터에 폐의약품 수거함 확대 설치로 시민들은 쉽게 폐의약품을 버릴 수 있다. 시는 기존 수거 장소인 보건소·보건지소·구미건강생활지원센터의 수거함도 계속 운영하며, 각 수거함에 모인 폐의약품은 자원순환과에서 수거해 소각될 수 있도록 안전한 폐의약품 처리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와 더불어 매달 18일을 약 수거 DAY로 지정하고 올바른 폐의약품 수거 방법을 홍보해 시민들의 폐의약품 수거를 독려하고 있다. 최현주 구미보건소장은 “폐의약품 수거함 확대 설치로 가정 내 폐의약품이 올바르게 배출될 수 있도록 하고, 약 수거 DAY를 적극적으로 홍보해 의약품 오·남용 예방 및 시민의 안전과 환경 보호에 힘쓰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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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안동교회 1909년~1952년 예배에 관한 연구(5)김 승 학 신학과 교수/기독교교육학 안동교회 담임목사 목차 서론 1. 김영옥 목사(초대) 시대의 예배 2. 이대영(2대)·정재순 목사(3대) 시대의 예배 3. 박상동(4대)·임학수(5대)·김영옥 목사(6대) 시대의 예배 4. 김광현 목사(7대) 시대의 예배 결론 3. 박상동(4대)·임학수(5대)·김영옥(6대) 시대의 예배: 1925년~1942년 (1) 4년간의 일본 고베신학교에서의 공부를 마치고 1925년 7월 안동교회 4대 담임교역자로 부임한 박상동 목사는 평양신학교에서 1년 동안 별신학과정 후 목사안수를 받았다. 고베신학교는 미국 장로교 선교사들이 운영한 신학교로 평양신학교의 교과 과정과 흡사했다. 또한 평양신학교에서 1년 과정은 그에게 한국교회의 이해도를 높일 수 있게 했을 것이다. 1924년 평양신학교를 졸업한 임학수 목사는 1929년 1월, 안동교회 제5대 담임목사로 부임했다. 박상동 목사, 임학수 목사와 김영옥 목사는 모두 평양신학교 출신으로 장로교 예배 신학을 벗어난 적이 없으며, 장로교회를 꾸준히 섬긴 목회자들이다. 당시 여러 교회의 예배순서를 비교 분석한 1930년대 예배의 주된 특징은 다음과 같다. 1)주악이나 성악으로 시작하던 미국 교회형의 주일 예배 순서로부터 점차 묵도를 첫 순서로 소개하기 시작하였다. 묵도는 한국적 예배의 특징이 되었다. 2)기도순서가 다양해지면서 예배의 앞부분에서 공동기도의 성격을 띠던 기도가 평신도가 담당하는 대표기도로 변하였다. 3)설교중심의 예배가 정착되면서 헌금과 광고가 설교 앞부분에 위치하였다. 1) 주일 오전예배 1922년 예배 모범은 선교 50주년을 기념하는 1934년, 약간의 개정을 거친 대한예수교장로회 헌법에도 거의 동일하게 계속되었다. 그러나 1934년에 개정된 대한예수교장로회 헌법의 예배 모범에도 주일 예배의 순서는 소개되지 않는다. 1930년대 주일 예배를 소개하는 자료로는 마포삼열 선교사가 제안한 예배 순서에 기초한 1932년의 새문안교회의 주일 예배 순서와 곽안련 선교사의 예배 순서와 비슷한 예전적인 형식을 가진 1934년 소열도(T. S. Soltau)에 의해 소개된 주일 예배 순서가 있다. 1932년 새문안교회의 주일 오전 예배순서는 다음과 같다: 예배사→찬송→기도(장로 송순명)→시편(1편)→성경봉독(장로 송순명)→찬송(성가대)→설교(목사 차재명)→기도(목사 차재명)→연보와 기도→광고→찬송→축복기도. 또한 1935년 1월 13일(주일) 정오 12시에 있었던 평양 장대현교회의 주일 오전 예배 순서는 다음과 같다: 주악(박요한)→찬송(149장)→기도(윤칠삼)→성경(마21:28~32)→광고→헌금(주악)→기도(변인화)→찬양(성가대)→설교(두아들, 남궁혁)→기도(남궁혁)→찬송(1장, 일동)→축복(채필근)→송영. 이 시대 예배는 전주로 시작하여 후주로 끝나는 것을 특징으로 하고 있는데, 새문안교회나 장대현교회는 이전과 는 다르게 이 순서를 포함하고 있다. 전주와 후주는 예배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신호역할을 했다. 전주 후에는 인도자의 예배의 말씀이 따른다. 그리고 예배의 말씀과 축도는 분명한 구두로 예배의 시작과 마지막을 선언하는 역할을 했다. 특히 성가대의 중요성이 대두되었다. 성경 봉독과 설교 사이에 성가대의 찬양이 들어가고 설교 후에 설교자의 기도가 따르는 것이 장로교 예배의 특징인데, 1930년대에 접어들면서 주일 오전 예배의 경우 비예전적 형식을 탈피하고 본래 장로교회의 예배 형식을 회복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1930년대에 접어들면서 곽안련 선교사가 1920년대 초에 제안한 예전적인 예배 형식이 일정 부분 개 교회에 반영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1930년대의 주일 오전 예배 순서는 마포삼열 선교사가 제안한 간단한 구도자적 예배 순서는 감소하고, 보다 예전적인 예배 형식이 한국 장로교회에 자리잡아 가고 있었다. 안동교회의 경우 1920년대부터 1952년까지 안동 성소병원의 간호부장으로 봉사한 사은라(E. J. Sharrocks) 선교사에 의해 1928년 1월, 최초로 성가대를 조직했다. 예배가 성가대의 주악으로 시작하고 마칠 뿐 아니라 성가대의 찬양 순서를 포함한 1930년대 주일 오전 예배의 조건을 안동교회가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이전의 집회 형식의 예배에서 예전 요소를 갖춘 평양 장대현교회의 예배형식으로의 전환이 보다 용이했을 것이다. 즉 1930년대 안동교회의 주일 오전예배는 앞서 언급한 평양 장대현교회 예배 순서와 비슷한 형식으로 예배드렸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2) 특별예배 1943년 12월 17일(월) 오후 7시 선교 50주년을 맞이하며 안동교회에서 회집하여 희년 기념 예식을 가졌는데, 순서는 다음과 같다: 찬송→기도→(임학수 목사)→성경(이사야 6:13, 장사성 목사)→주악과 찬양(안동교회 찬양대)→설교(권찬영 선교사)→표창→교회 약사(서화선 목사)→기념사(김영옥 목사)→축사(내빈 주기철 목사, 목사대표 김인옥, 장로 대표 김익현, 전도사 대표 황영규)→찬송(1장)→축도(강성직 목사). 1934년 10월 21일(주일) 선교 50주년을 맞이하여 대구에서는 희년 감사 예배를 드렸는데, 주일에 가진 예배 순서는 다음과 같다: 찬송(137장)→기도→성경(최재화 목사)→찬양(배성야 학생)→연보→광고→찬양(희도 학생)→강도(길선주 목사)→찬송(1장)→축도. /논문 발췌‧정리=박은숙 기자/ <논문 원본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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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안동교회1909년~1952년 예배에 관한 연구(3)김 승 학 신학과 교수/기독교교육학 안동교회 담임목사 목차 서론 1. 김영옥 목사(초대) 시대의 예배 2. 이대영(2대)·정재순 목사(3대) 시대의 예배 3. 박상동(4대)·임학수(5대)·김영옥 목사(6대) 시대의 예배 4. 김광현 목사(7대) 시대의 예배 결론 1. 김영옥 목사(초대) 시대의 예배 / 1909년~1920년 말(3) 3) 수요예배 수요예배에 관해 처음으로 기록된 1917년 2월 22일 당회록에는 수요저녁예배라는 명칭으로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수요저녁예배에는 설교만 할 것이 아니고 모든 교인이 신구약성경 좋은 구절을 택하여 암송도 하고 통독도 하기로 결정하다.” 안동교회의 수요저녁예배가 정확하게 언제부터 시작됐는지 알 수는 없다. 그러나 1917년에 안동교회는 수요저녁예배를 가졌는데, 수요저녁예배는 주일오전예배에 비해 보다 간단했다. 따라서 1910년대 안동교회의 수요예배는 마포삼열 선교사가 제안한 예배순서, 즉 찬송→기도→찬송→성경→강도→찬송의 틀을 그대로 유지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4) 새벽기도회 길선주 목사의 특별집회 기간 중에 새벽기도회가 실시되었다. 평양 대부흥운동의 결과 한국교회의 전통으로 길선주 목사에 의해 확산된 새벽기도운동이다. 이후 새벽기도회는 한국교회 공예배의 하나로 정착되었다. 사실 평양 대부흥 이전에도 새벽기도회로 모이는 교회가 있었다. 한국 새벽기도에 관한 기록 중에서 1903년에 로스 선교사의 글에서 “왕 목사(현지인 목사)는 새벽에 일어나 손자들과 함께 새벽기도를 드렸다”라는 기록과 만주에서 세례를 받은 백홍준이 새문안교회에 출석하고 있을 때 매일 새벽기도를 가졌다. 하지만 새벽기도회는 대부흥 이후 전국 교회로 확산되었다. 기독교에 입문하기 전 도교와 선불교에서 새벽기도를 경험한 적이 있던 길선주 목사는 한국교회에 새벽기도회를 도입하였다. 길선주 목사의 집회가 시작된 다음 날 11월 14일(월) 오월번 선교사가 새벽 6시 새벽기도회(Sunrise prayer meeting)에 참석했음을 새디(Sadie)의 다이어리는 기록한다. 부흥사경회 이전까지 안동교회가 새벽기도회로 모였다는 기록은 새디의 다이어리에서 찾아볼 수 없다. 또한, 집회가 끝난 후 새벽기도회가 지속되었다는 기록 역시 발견되지 않는다. 따라서 길선주 목사를 통해 안동교회에 새벽기도회가 소개되어 길 목사 집회 기간 중에 한시적으로 운영되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5) 외국인예배 외국인예배는 선교사와 그 가족들이 드린 예배였다. 새디 선교사가 안동에 도착해서 함께 동역하던 권찬영 선교사와 별리추 선교사는 모두 독신이었다. 오월번, 새디 선교사 부부만 자녀를 둔 가정이었다. 따라서 안동에서의 외국인 예배는 자연스럽게 오월번 선교사 사택에서 이루어졌을 것이다. 오월번 선교사 가족이 안동에 도착한 지 1달 후인 7월 3일, 공식적으로 감격적인 첫 외국인예배를 드릴 수 있었다. 새디의 다이어리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4시 30분을 외국인 영어 예배시간으로 기록하고 있다. 오후 예배를 마치고 선교사들이 오월번 선교사 사택에서 식사한 기록도 여러 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6) 주일학교 성경공부 안동교회 80년사에 따르면 주일학교는 1914년 2월에 준공된 2층 목조 함석지붕 예배당에서 아침 9시 예배를 시작하여 1시간 동안 예배를 드린 후 계속해서 분반(分班)하여 지정된 교사에 의해 성경공부를 계속했다. 남장년부에는 청·장·노년의 광범위한 연령층이 함께 모여 성경공부를 했으며, 공부시간은 주일 아침 유년부(오늘의 초등학생부)의 예배와 성경공부가 끝난 뒤 곧바로 10~11시부터 예배당을 사용하였다. 성경공부교재는 아동부와 마찬가지로 선교본부로부터 가져온 교재 원본을 등사하여 담임목사와 선교사들이 교사들에게 가르친 후에 학생들과 분반공부를 하게 하였다. 여장년부는 세 부서 중에서 가장 활성화된 부서였으며, 유년부 예배가 끝난 후 남장년부와 동일한 시간에 휘장으로 분리된 예배당에서 운영되었다. 7) 예배당의 구조와 예배모습 오월번 선교사의 부인인 새디 선교사의 1910년 9월 23일 일기에는 ‘ㄱ’자 예배당 부지를 구입하여 대지를 고르게 했음을 기록한다. 당시 안동교회 성도들은 예배당 건축을 위한 헌금을 했다. 에비여사에 따르면 1910년 10월 9일 주일 오후 예배 시 16칸 ‘ㄱ’ 예배당 건축을 위해 특별헌금을 했다고 기록한다. 16칸 예배당은 30평 가까운 공간으로 결코 작지 않은 규모였다. 남녀유별의 유교적 풍습에 따라 남자와 여자의 출입 동선을 분리해야 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ㄱ’자 예배당으로 건축되었다. 또한, 50평 규모의 안동교회 두 번째 신축예배당은 1913년 11월에 공사를 착수하여 1914년 2월에 준공되었다. 안동교회의 두 번째 예배당인 2층 목조 함석지붕 예배당은 가운데 남녀 분리를 위한 휘장이 존재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초기 예배는 의자 없이 마루로 된 예배당에서 예배를 드렸다. 기도할 때는 모두 꿇어앉아 머리를 땅에 대고 절하는 형식을 취했다. 당시 풍속에 따라 휘장(Curtain)으로 남녀를 분리했다. 일반적으로 강대상을 바라보며 오른쪽은 여성이, 남성은 왼쪽을 사용하였다. /논문 발췌‧정리=박은숙 기자/ <논문 원본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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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쉼터’에서 무더위 피해 가세요김천시 지좌동 주민자치위원회(위원장 이준식)와 관내 목공예제조업 ‘목여의단비(대표 정환재·김선주)’는 8월 3일 관내 덕일아파트에 나무 벤치 1개를 기증했다. 이날 기증한 나무 벤치는 지좌동 주민자치위원회 회원들과 목여의단비 대표 내·외가 뜻을 모아 함께 자체 제작한 것으로, 스프러스 원목으로 제작되어 비바람에 강해 오래도록 튼튼하게 사용할 수 있다. 기증된 나무 벤치는 덕일아파트 어르신 쉼터에 설치해 지좌동 주민들의 작은 휴식처로 이용될 예정으로, 힐링과 휴식의 공간, 대화의 장, 기다림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역할을 톡톡히 할 것으로 보인다. 남상연 지좌동장은 “손수 제작한 귀한 원목 벤치를 선뜻 기증해주셔서 감사드리며, 주민자치 위원들과 목여의단비 대표의 마음이 모여 만들어진 벤치가 시민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한편, 지좌동 주민자치위원회와 목여의단비는 지난 6월 미니 텃밭을 분양하는 사업을 함께 추진하여 독거 어르신들의 정서 지원 및 유대감 강화, 나눔 문화 확산에 동참하기도 하는 등 지역사회를 위한 선한 영향력을 전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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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안동교회(1909년~1952년) 예배에 관한 연구(2)김 승 학 신학과 교수/기독교교육학 안동교회 담임목사 목차 서론 1. 김영옥 목사(초대) 시대의 예배 2. 이대영(2대)·정재순 목사(3대) 시대의 예배 3. 박상동(4대)·임학수(5대)·김영옥 목사(6대) 시대의 예배 4. 김광현 목사(7대) 시대의 예배 결론 1. 김영옥 목사(초대) 시대의 예배 / 1909년~1920년 말(2) 1) 예배형식과 순서(2) 선교 초기 전국 곳곳에 설립된 교회의 예배를 선교사들이 직접 인도할 여유가 없었고, 한국어가 서투른 선교사들이 예배 전체를 인도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래서 선교사들은 함께 동역하는 조사들을 교육시켜 예배를 인도하게 했다. 당시 한국인 평신도가 인도한 예배는 3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첫째, 예배 순서를 가급적 단순하게 구성하고 진행함으로써 예전적 요소가 충분히 포함되지 않았다. 둘째, 주제를 논리적으로 전개하는 설교가 선교사들에게 쉽지 않았기 때문에 성경공부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셋째, 지역에 산재한 교회들이 연합하여 예배를 드렸다. 1887년에 설립된 우리나라 최초의 장로교회인 새문안교회의 1890~1900년 초 주일 오전예배는 10:30에 시작해 11:30에 마쳤다. 예배 순서는 찬송→기도→성경봉독→전도설교→기도→봉헌→찬송 등의 순서로 매우 간단했다. 이 순서는 마포 삼열 선교사가 제안한 예배순서와도 흡사한데, 마포 삼열 선교사의 제안은 찬송→기도→성서봉독→회중의 기도→찬송→성서교훈→기도→봉헌→찬송의 순서로, 찬송으로 시작하여 찬송으로 끝났다. 안동교회는 1909년 8월 8일(주일) 첫 예배를 드렸는데 매서 김병우를 포함하여 8명이 첫 예배에 참석했다. 첫 예배를 인도한 사람은 안동의 기독서원을 운영하고 관리하던 매서인 김병우였다. 안동교회의 주일 오전예배, 주일 오후예배, 외국인영어예배, 또한 새벽기도회의 시간과 장소는 오월번 선교사의 부인 새디(Sadie Welbon) 선교사와 안동주재 선교사들의 선교보고와 편지 등을 통해 어느 정도 추측이 가능하지만, 예배 순서와 내용을 알 수 있는 직접적인 자료는 1900년대처럼 거의 전무하다. 다만 당시 장로교 선교사가 활동했던 지역의 예배 형식과 내용은 거의 유사하기 때문에 앞서 언급한 마포 삼열 선교사가 제안한 예배 순서가 초기 안동교회의 예배 순서였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또 이 시기에는 1911년 가을, 안동교회 초대 담임으로 부임한 김영옥 목사가 안동교회 예배에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도 있다. 특히 김영옥은 평양신학교 교수로 사역한 곽안련 선교사에게 사사 받았기 때문에 예배 신학 및 예배내용과 순서 등에 있어서 곽 선교사의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2) 주일 오전예배 및 오후예배 안동교회의 첫 예배의 형태와 시간에 관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새디 선교사의 다이어리와 다른 선교사의 선교편지, 선교보고에 따르면 주일 오전예배, 오후예배, 외국인예배가 존재했다. 특히 주일 오전예배는 10시 30분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사료된다. 또 주일 외국인예배, 즉 선교사와 가족들을 위한 영어예배 시작 시간이 오후 4시 혹은 4시 30분으로 추론되는 바, 주일 오후예배는 오전예배를 마치고 점심 식사 후인 1시부터 4시 30분 사이일 것으로 추측된다. 주일 오전예배의 정확한 순서도 찾을수는 없지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네비우스 선교정책에 따른 예배원칙과 미국 북장로교 출신 선교사가 인도한 예배순서에 따랐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주일 오전예배 시간은 안동교회가 창립된 지 1년이 지나 ‘ㄱ’자 예배당을 신축하고, 1910년 11월 13일(주일)부터 20일(주일)까지 평양 장대현교회 길선주 목사를 초청하여 가진 특별부흥집회 시간에서도 짐작해볼 수 있다. “평일 집회는 오전 10시에 속개되었고, 집회 마지막 날인 20일은 주일로 오전 10시 30분에 시작됐으며 만원을 이루어 예배당이 꽉 찼다”는 기록이 있다. 주일 오후예배 시간의 경우, 당회록은 보다 구체적인 예배시간을 추측하게 한다. 1916년 11월 8일 당회록에 따르면 주일 오후 2시 30분에 세례 7인, 학습 5인에 대한 성례식이 있었다. 그 이후의 당회록에도 성례식은 계속해서 주일 오후 2시 30분에 있었다. 세례식과 성찬식만 별도로 가졌기 보다는 오후예배 시 함께 가졌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1910년대 주일 오후예배시간은 2시 30분으로 적시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논문 발췌‧정리=박은숙 기자/ <논문 원본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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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시, 인덕초 등 5개소 바닥형 보행신호등 설치구미시는 어린이보호구역 내 횡단보도 보행자 교통사고 예방을 위해 인덕초·선주초·상모초·원호초·왕산초 등 5개소에 LED 바닥형 보행신호등을 설치했다. 시는 횡단보도 내 바닥형 보행신호등을 2022년부터 설치를 시작해 구미역, 형일초, 인동파출소 등 현재까지 9개소에 설치했으며, 연말까지 총 16개소에 설치할 계획이다. 바닥형 보행신호등(일명 바닥신호등)은 횡단보도 내 보행신호등과 연동해 횡단보도 대기선 바닥에 설치된 LED 표출부 색상이 적색과 녹색으로 변해 시인성을 강화할 수 있는 보행신호등 보조장치이다. 또한, 시는 보행신호 음성안내 보조장치도 시범적으로 설치할 예정이며, 보행자와 운전자의 교통신호 준수율이 향상돼 어린이 교통사고 예방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 김기천 교통정책과장은 “어린이보호구역 내 교통안전시설의 지속적인 정비와 확충으로 안전한 등하굣길 조성에 최선을 다할 것이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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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시, '복지' 알리고 나누고 누리고구미시(시장 김장호)는 안전한 행복 도시 구미로 나아가기 위해 촘촘한 사회안전망을 구축하고 복지위기가구를 발굴 집중지원하는 「찾아가는 이동복지관」을 운영한다. 찾아가는 이동복지관사업은 2023년 구미시 종합복지관 특화사업으로 구미·금오종합복지관 2개소에서 관내 원룸밀집 지역에 찾아가 복지위기가구를 발굴해 다양한 복지서비스를 안내하고, 복지서비스 유관기관들이 협력해 정신보건, 법률, 일자리 상담 등 상황별·분야별·대상별 전문적인 복지상담을 통해 맞춤형 복지서비스를 연계한다. 구미종합복지관은 ▲인동동, 진미동, 양포동 지역 내 매주 수요일 오후 2시~5시 ▲구미중독관리통합센터, 재가노인통합지원센터가 참여해 시민들에게 우울증, 중독(도박·알콜)분야의 전문적인 진단검사와 맞춤형 복지상담이 제공되고 금오종합복지관은 ▲원평동, 선주원남동, 상모사곡동 지역 내 매월2.3.4주 금요일 오후 2~5시 ▲안마기·혈압기 체험, 생활공구용품을 대여하여 이용하는 ‘생활물품공유소’ ▲구미시설공단이 후원하는 주민들의 체험 프로그램(식물심기·푸드꾸러미 등) ‘주민참여공작소’ 와 같은 다양한 복지서비스 기관들의 분야별 이동복지 체험부스가 운영된다. 또한, 마을복지 최전선에 있는 읍면동 지역사회보장협의체가 함께해 복지사각지대 발굴을 위한 지역주민들의 참여를 유도함은 물론, 나아가 다양한 복지서비스 유관기관 및 봉사단체와 밀접한 교류로 지역자원 네트워크가 활성화되는 시너지 효과도 기대해 볼 수 있다. 안진희 복지정책과장은 “원룸지역 등 복지 사각지대 발생 고위험 지역을 자체 발굴체계 강화를 위해 현장을 찾아다니며 복지위기가구에 알려주고 나눠서 함께 누릴 수 있도록 더욱 신속하고 두텁게 복지서비스를 제공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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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선교 초기의 기독교 모습들(11)안동선교 초기의 기독교 모습들(11) 김 승 학 목사 신학과 교수/기독교교육학 안동교회 담임목사 목차 서문 1. 안동 땅을 밟은 첫 선교사, 베어드 2. 첫 교회들, 비봉·국곡·풍산교회 3. 안동지역 최초의 학습자, 홍재삼 4. 안동선교부 초대 주재선교사, 소텔 ............................................... 11. 안동지역 교회의 첫 당회 12. 안동지역 최초의 여전도회 13. 최초 성경학교, 안동여자성경학교 결론 12. 안동지역 최초의 여전도회, 안동교회 여전도회 / 1913년 일찍이 부인전도회가 조직되어 있던 안동교회에 1913년 2월 7일 여전도회가 조직되어 1년이 지난 1914년에 다비다회란 이름으로 비공식적으로 활동하다가 수개월 후 당회의 허락을 받아 정식 여전도회로 발족했다. 당시 여전도회는 매월 첫 번째 주일 화요일 저녁에 월례회로 모였고, 보통 약 30명 정도가 모였다. 월례회로 모여서는 예배를 드리고 헌금 순서도 있었다. 일반적으로 여전도회 회원들은 주로 개인적으로 전도하는 일에 힘을 쏟았다. 특히 1928년 2월 19일 안동교회에서 경안노회 여전도회연합회가 창립되기 전(前) 안동선교부는 이미 경안노회 경내의 여전도회 회원들을 위한 사경회를 1917년부터 매년 개최했다. 1917년 1월 21일 열린 첫 도사경회의 강사는 이희봉 목사와 맥파랜드(E. F. McFarland) 선교사였으며, 회집 인원은 남녀 합하여 230명 정도 되었다. 1년에 한 차례씩 개최된 여도사경회는 보통 1주일 동안 계속되었으며, 안동군부 지역에서는 물론 영주, 의성, 상주, 문경, 예천, 봉화, 영덕, 영양, 청송 등지에서 온 회원들이 성경사경회 기간 동안 먹을 양식을 가지고 와서 숙식을 해결하는 열심이 있었다. 사경회의 강사 중에는 당시 가장 영성이 뛰어난 길선주 목사, 김익두 목사 등이 포함되었다. 도사경회에 참석한 여전도회 회원들은 전해질 말씀의 은혜를 설레는 마음으로 기대하고 기다렸다. 더욱이 도사경회 기간 중 반별로 나뉘어 성경공부한 것과 요절을 암송한 것은 잊을 수 없다고 수차례 경안여전도회 회장을 역임한 고(故) 김점향 권사는 전언한 바 있다. 또한, 사경회 기간 중 안동교회의 여전도회 회원들은 많은 봉사를 통해 경안노회 여러 교회의 본(本)이 되었다. 고(故) 김점향 권사는 1925년경 안동교회 여전도회 회원수가 약 30~40명 정도가 된 것으로 생전에 기억했다. 당시 여전도회 회원 자격은 세례를 받은 여성에 제한했다. 경안노회 여전도회는 창립총회 하루 전인 1928년 2월 18일에 열린 도사경회 때 대구주재 버그만(G. O. Bergman) 선교사가 내안하여 발기회를 가진 것이 여전도회 경안연합회의 시작이 되었다. 당시 발기인으로는 안동주재 크로더스 선교사의 부인인 엘라 맥클렁 선교사, 안동교회를 시무하고 있던 김정숙 전도사, 김향란, 김정희, 안주봉, 김순애 제(諸)씨, 그리고 권신희 집사와 김화석 은퇴 장로의 조모인 권순옥 집사가 포함되었다. 경안연합회의 초대 회장에는 안동교회 전도사로 시무하던 김정숙 전도사가 피선되었고, 김향란 부회장, 김정희 회계 등 안동교회 여전도회원이 경안연합회가 창립될 때 산파역을 했을 뿐 아니라 그 후에도 경안연합회의 중추적 역할을 감당하였다. 새로 조직된 경안연합회는 교통수단이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1930년에 열린 3회 총회에 이미 39지회로 확장될 정도로 성령의 역사와 회원의 열심이 있었다. 오늘날도 2년에 한번씩 1박2일로 열리는 경안노회 여전도회연합회 총회의 제목은 전통적으로 ‘제OO회 총회 및 도사경회’로 역사와 전통을 중시하고 있다. 경안노회 여전도회연합회는 창립 80주년이 되기까지 일제 탄압과 6·25 전쟁으로 총회가 개최되지 못한 두 차례를 제외하고는 78차례 총회가 개최되었는데, 안동교회에서 64회, 영주제일교회에서 6회, 안동동부교회에서 5회, 안동서부교회에서 3회의 총회가 개최됨으로써 안동교회는 여전도회 활동의 산실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논문 발췌‧정리=박은숙 기자/ <논문 원본 www.gbh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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